길원춘, @Jinagalgeyo
* 날조와 망상이 200% 들어갔습니다.
‘아빠가 가장 바라는 모습으로 태어난 거야.’
가장 사랑하는 이를 꼭 닮은 얼굴로, 활짝 웃으며 말하는 아이의 말은, 아이가 하는 말치고 퍽 이른 말이어서. 그때부터 한유진은 사랑스럽기만 한 아이를 있는 힘껏 사랑하리라 다짐했다.
[현제유진] Happy 100th Day!
“체인질링, 혹시 가지고 싶은 거 있어? 그런 거 있잖아, 먹고 싶은 거라던가, 가지고 싶은 거라던가…….”
“미안해 아빠. 잘 모르겠어.”
“…괜찮아, 미안해하지 않아도 돼.”
미안해하는 체인질링의 머리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자 졸린 듯 하품을 하며 제 품에 꼬물꼬물 들어오는 체온이 높다. 언제 맡아도 좋은 아기 분 냄새가 아기 용의 몸에서 맡아졌다. 일어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꾸벅거리는 아이를 고쳐 안은 한유진이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등을 토닥이는 부드러운 손길에 잠이 많아진 아이가 스르륵 눈을 감았다. 곧이어 고롱고롱, 고른 숨소리와 함께 깊게 잠든 아이를 아기 침대에 내려놓은 한유진이 살며시 밖으로 벗어났다.
마침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들어왔다. 방금 잠든 아이와 똑같이 생긴 사내가 한유진을 발견하자마자 활짝 웃는 것이 세상을 다 가진 이만 같았다. 금방이라도 두 팔을 벌리고 품에 안을 것만 같은 얼굴에 한유진이 몸을 물러 뒤로 피했다.
“아 진짜, 이럴 때가 아니에요! 좀, 떨어져 봐요, 좀!”
“공주님이 이렇게 밀어내다니. 현제는 속상하다네.”
“한 번만 더 그놈의 현제 타령하면 쫓아낼 줄 알아요.”
한유진은 시무룩한 척을 하는 성현제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하고자 하는 말을 숨기지 않고 말했다.
“곧 체인질링이 태어난 지 100일이에요.”
“흐음,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체인질링이 요정종이라지만……. 저는 챙겨주고 싶어요.”
비장하게 느껴질 만큼 퍽 진지한 얼굴에 성현제가 작게 웃었다. 어쩜 제 파트너는 사랑스럽지 않은 곳이 없는지.
“유진 군과 나의 아이인데 당연하지.”
“…그렇게 이야기 좀 하지 말라니까…….”
“왜, 맞지 않나. 나의 일부가 들어갔고, 유진 군이 품었,”
“아 진짜! 됐고,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 의견이나 내놓으세요.”
“아빠? 어디가?”
“깼군.”
“으응, 깼어? 안 피곤해?”
“졸려…….”
그 날, 무리하게 힘을 쓴 뒤로 쭉 졸려 하며 하루의 반을 넘게 잠드는 것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깨어 있는 순간도 쉬이 버티기 힘들어했다. 그 탓에 늘 한유진이나 성현제의 품(아이는 그에게 안기는 것을 유난히 싫어해서 오만상을 찌푸리곤 했다)에 안겨 살았다. 다행히 오늘은 한유진이 저를 차지한 것이 내심 기뻤다. 물론, 뒤통수를 간지럽히는 긴 손가락이 거슬리긴 하지만, 품에 안긴 것은 저인데 그까짓 게 대수랴.
눈이 부시지 않도록 눈가를 드리운 작은 그림자에 푸스스 웃으며 한유진의 품으로 꼬물꼬물 기어들어 가면 한유진이 아이를 고쳐 안았다. 입꼬리가 저만치 올라갈 것만 같은 아이의 얼굴이 보기 좋아 셋이서 나란히 웃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한유진과 있으면 정말 다른 아이들과 다를 바 없는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 탓인지 체인질링의 어리광이 날이 갈수록 는 것도 사실이고,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 용이 제 나이에 맞게 구는 것은 기꺼운 변화였다.
“햇살, 따뜻해.”
“더 자도 돼. 이따 깨워줄게.”
“아니야, 이왕 깬 거 이따 밤에 잘래, 아빠.”
평소라면 자신도 봐 달라며 되지도 않는 3인칭을 썼을 성현제가 쥐 죽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그것이 미심쩍어 그를 향해 눈을 흘기던 아이는 이내 좋은 게 좋은 거라며 고개를 홱 돌려버렸다.
“이런, 단단히 미움을 샀나 보군.”
“그러게 평소에 좀 잘하지 그랬습니까.”
“억울하다네.”
시무룩한 얼굴을 한 성현제를 가볍게 타박하며 세 사람이 나란히 공원을 걸었다. 기분 좋은 흔들림에 체인질링의 눈이 스르르 감길 때쯤, 달콤한 냄새가 났다.
“어, 솜사탕이다. 오랜만이네. 솜사탕 먹어봤어?”
“아직 안 먹어봤는데…….”
“그럼, 그 아빠랑 나눠 먹자. 댁도 먹을 거죠?”
저가 아빠라고 불러서인지 한유진도 종종 자신을 아빠라 칭하긴 했으나 여전히 조금 어색해하며 볼을 붉히면서도 다정하게 물어왔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니 그걸 지켜보던 가게 주인이 나무 막대를 기계에 넣고 돌돌 돌렸다. 점점 나무 막대 주변으로 솜뭉치 같은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크기를 늘려갔다. 파란색 솜사탕은 성현제에게로, 체인질링의 머리색과 비슷한 솜사탕은 아이의 손에 쥐어졌다.
“아이고, 가족이 보기가 좋네요~”
다른 사람으로 보이는 아이템을 쓴 탓에 그들을 알아보지는 못하겠지만, 어쨌든 어디로 보든 세 사람은 가족으로 보일 만한 모양새였다. 아빠라고 부르는 아이를 안고 다니는 이와 아이와 똑 닮은 남자가 나란히 걷고 있는 모습이란. 그러나 그 말에 괜히 민망해진 한유진이 얼굴을 붉히며 저만치 도망가는 것을 성현제가 재빠르게 쫓아갔다.
“유진군, 날도 추우니 이제 들어가지.”
“그렇네요, 이제 슬슬 들어갈까?”
성현제가 한유진에게는 제 코트를, 그리고 체인질링에게는 조그만 목도리를 단단히 여미며 말했다. 목도리를 여미는 손을 화난 듯 쳐다보다가도 한유진이 나긋하게 물어보는 목소리에 얼굴을 펴고 고개를 끄덕였다. 오랜만에 나온 산책에 기분이 매우 좋아 날개가 절로 퍼덕거렸다. 조그만 날개가 가슴을 간지럽게 푸드득 거리는 것에 기분 좋게 웃으며 한유진이 날개를 쓰다듬었다.
그 모습이 여간 귀여운 것이 아니어서 금방이라도 들어서 얼굴 곳곳에 입을 맞추고 배 방귀를 꿔주고 싶은 것을 꾹 참고, 대신 한유진은 제 핸드폰을 성현제에게 넘겼다. 이런 일이 익숙한 듯 한유진이 말을 채 하기도 전에 카메라 기능부터 켜고 봤다.
“잘 찍으세요. 지금 엄청 귀여우니까.”
“물론이네.”
한참을 찰칵, 찰칵 요란하게 움직인 탓인지 평소보다 조금 느린 발걸음에도 유난히 기분이 좋은 아이의 얼굴에 웃음이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다. 한유진과 성현제, 그리고 체인질링 세 사람의 집이 보일 때쯤, 체인질링은 다시 꾸벅꾸벅 졸아 금방이라도 잠들 것만 같았다. 아마도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한유진의 조심스레 아이를 깨우는 소리만 없었다면 곯아떨어졌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는 저를 부르는 조용하고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쫑긋거리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체인질링, 잠깐 일어나 볼래?”
“으응, 졸린데…….”
“미안해, 잠깐만이면 돼.”
이윽고 문이 열리고, 폭죽이 요란하게 터지는 소리가 들려 체인질링이 느릿하게 반응했다. 아기치고 의연한 반응이었으나 그는 애초에 요정종이었으니 이나마 반응한 것도 꽤 큰 반응이었다. 이어서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축하에 혼이 쏙 나간 것 같은 표정을 지은 체인질링이 한유진을 바라보았다.
“오늘 네가 태어난 지 딱 100일이 되는 날이야.”
“응?”
“한국에서는……. 100일이 되면 이렇게 다 같이 축하해주거든, 그래서 너도 축하해주고 싶었어. 100일이나 나랑 살아줘서 고맙다고, 태어나줘서 고맙고 사랑한다고.”
체인질링은 아무런 말 없이 한유진의 얼굴을 보다가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혹시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은 걸까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못하던 한유진은 그의 어깨에 닿는 성현제의 큰 손에 진정하고 아이를 살펴보았다. 귀까지 빨개진 채 얼굴을 숨기는 것을 본 한유진이 그제야 안심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에 여기저기서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간지럽게 귓가를 건드렸다. 얼른 고개를 들어 저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다고 알려주고 싶은데, 부끄러운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가린 아이는 그럴 생각이 영 없는 듯했다.
“계속 서 있지 말고 들어가지.”
“하지만…….”
“어서, 괜찮네. 그렇지?”
작게 고개를 끄덕이며 고개를 드는 아이의 얼굴이 여전히 발갛기만 했다. 날개를 조그맣게 퍼덕거리며 제 옷을 꽉 잡은 작은 손에 가슴이 벅찼다. 넓은 거실에 들어가자 한유현, 박예림, 강소영, 문현아 등 헌터들이 빼곡히 자리해 손뼉을 치며 환영했다. 그 가운데 가장 상석에 체인질링을 중간에 앉히곤 양옆으로 성현제와 한유진이 앉았다.
체인질링은 태어나 처음으로 차려진 제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눈동자를 열심히 굴렸다. 이곳저곳에서 진짜 성현제 판박이라던가(이 부분에서는 체인질링이 볼을 잔뜩 부풀렸다) 귀엽다던가 온갖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하얗고 큰 테이블이 아이를 위해 준비한 선물에 짓눌려 가라앉을 것만 같은 것을 멍하니 보던 체인질링은 갑자기 사위가 조용해진 것에 눈을 돌려 한유진과 성현제를 번갈아 보았다.
“이게 뭐야?”
“선물이야, 좋아할지는 모르겠다만.”
“선물이라네.”
그제야 며칠 전에 한유진이 제게 했던 질문이 떠오른 아이가 미소를 지으며 선물을 받았다. 양손에 야무지게 선물 두 개를 쥔 아이가 찬찬히 두 선물 상자를 풀기 시작했다. 성현제의 짙은 파란색의 선물 상자를 풀고 상자를 열자 역시나 핫핑크색 니트가 들어있었다. 제 머리색과 비슷한 색이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그렇게 기분이 나쁘지는 않아 괜히 상자를 덮고 테이블 위에 올려버리자 주변에서 웃음을 터뜨리느라 바빴다.
주위의 반응은 신경도 쓰지 않으며 아이는 한유진이 준 선물의 포장지를 찬찬히 뜯기 시작했다. 노란 오리가 그려진 종이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안에 뭐가 들었을지 따위를 생각하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졌다. 아이는 그것을 티 내려 하지 않으며 제법 진지하게 포장을 뜯었다.
“…마음에 들어?”
“…응, 정말로. 고마워 아빠.”
아이의 손에 들린 작은 회중시계에는 저를 안고 있는 한유진과 한유진의 어깨를 감싼 채 웃고 있는 성현제가 담겨 있었다. 가슴께가 간질거리며 무거운 것이 자꾸만 올라오려고 하는 것을 눌러 담으며 핑크색 니트가 담긴 선물 상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나도 봐주게.”
“고마워.”
태어나줘서 고마워, 체인질링.